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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지도자

이승엽(1976년 10월 11일 (음력 8월 1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내야수, 전 최강 몬스터즈 감독, 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감독이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No.77(감독)

2016년의 이승엽

기본 정보
로마자 표기 Lee Seung-yuop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6년 10월 11일(1976-10-11)(48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신장 183 cm
체중 87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1루수, 지명타자, 투수(입단 당시)
프로 입단 연도 1995년
드래프트 순위 1995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1995년 4월 15일
잠실LG
NPB / 2004년 3월 27일
세이부 돔세이부
마지막 경기 NPB / 2011년 10월 18일
오사카 돔세이부
KBO / 2017년 10월 3일
대구넥센
획득 타이틀
계약금 3억원(감독 시절)
1억 3,200만원(선수 시절)
연봉 5억원 (2023년)
경력

선수 경력

해설자 경력

감독 경력

기타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 2008년
WBC 2006년, 2013년
아시안게임 2002년
아시아선수권 2003년
이승엽
한글 표기: 이승엽
한자 표기: 李承燁
개정 로마자 표기: I Seungyeop
매큔-라이샤워 표기: Ri Sŭngyŏp
공식 로마자 표기: Lee Seung-yuop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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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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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초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해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1]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2][3]

한국 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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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4][5]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로부터 1년만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이 나와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6] 당시 삼성 1루수 요원 중에서는 김성래가 시범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해 전열에서 이탈한 데다[7] 부상에서 회복한 1993년부터 본격적인 주전 우익수로 나선 이종두가 어깨와 허리 통증을 호소해 전년도인 1994년부터 완전히 지명타자로 바꾼 양준혁이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바람에 1994년부터 포지션을 바꾼[8] 이만수 외엔 쓸만한 1루수 자원이 없어 그가 1루수로 전향했다.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9]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며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10]

  • 1995년에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해 장거리 타자로서 자질을 보였고,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백인천에게‘외다리 타법’을 전수받은 뒤 본격적인 홈런 타자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11]
  • 1997년에 장타력에 돋보여 홈런 1위(32개), 타점 1위(114개), 최다 안타 1위(170개)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 1998년에 38홈런, 102타점을 기록하여 당시 타이론 우즈와 시즌 최다 홈런 경쟁을 했으나 2위로 마감했다.
  • 1999년에 홈런(54), 타점(123), 득점(128), 출루율(0.458), 장타율(0.733)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 2002년현대 유니콘스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했고, 47홈런을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LG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 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곧 마해영의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이어져 삼성 라이온즈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 2003년 6월 22일 SK 투수 김원형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여 일본의 오 사다하루(27세 3개월 11일)와 MLB 알렉스 로드리게스(27세 8개월 6일)를 제치고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 고지(26세 10개월 4일)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롯데전에서 투수 이정민을 56째 홈런을 쳐내며 한국 프로야구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으나 2022년 무라카미 무네타카에 의해[12] 타이가 됐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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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자격을 취득한 후 2003년 12월에 계약했으며 본인에 앞서 김재박1979년 1월 해당 팀(당시 롯데 오리온즈)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13] 군대 문제가 걸려 무산됐다. 다. 연봉은 2억엔이었는데, 당시 팀 멤버 중 그를 제외하고 2억엔이 넘는 선수는 마무리 투수인 고바야시 마사히데밖에 없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런 파격 대우 때문에 팀 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팀이 타 선수들의 대우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진정됐다. 이듬해인 3월 27일 개막전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세이브의 에이스 투수였던 마쓰자카로부터 2루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좋았던 첫 시작과 달리 시즌 후 14홈런, 2할대 타율, 50타점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범 경기에서 타율 0.100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2군으로 강등됐다. 그러나 4월 초 1군으로 복귀해 팀의 중심 타선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상대팀 선발 투수가 좌완일 때 선발 타선에서 제외되는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기용됐다. 시즌 최종 타율은 2할대 타율이었지만 홈런 수가 팀 내에서 최다인 30개(이 기록은 지바 롯데 마린스의 현 홈 구장인 QVC 마린 필드 개장 이후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기록)로, 전년도에 비해 장타력 부분에서의 제 기량을 찾았고, 팀의 플레이오프 진입에도 공헌했다. 재팬 시리즈에서 처음 맞붙은 센트럴 리그 소속의 한신 타이거스 투수들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1차전에서 만난 한신 타이거스의 에이스인 이가와 게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에구사 히로타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3차전은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됐지만 4차전에서는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선제 홈런을 쳐 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이 재팬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마에 도시아키에게 밀려 제팬 시리즈 MVP 수상에 실패했다. 2005년 시즌 후 열린 아시아 시리즈에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각각 3번과 6번 타자로 출전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이승엽.

2005년 시즌 후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며 재계약하는 듯했으나 수비 위치 보장과 극단적인 플래툰 시스템 하의 기용 등 본인의 의사와 지바 롯데 마린스가 내세운 조건이 맞지 않아 1월 19일에 이적했다.[14]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는 그를 개막전 4번 타자로 파격 기용했는데, 이에 부응해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그의 맹활약과는 반대로 팀은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진과 부상자가 속출해 2005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15])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2006년 시즌 후 MLB에 진출하려고 했던 그는 그 계획을 팀의 우승 후로 연기했다. 계약 내용은 외부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4년 계약이라는 큰 틀 안에서 시즌이 끝날 때마다 다시 계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팀이 계약 기간 중 우승할 경우 메이저 리그 진출을 보장받는 옵션이 계약 내용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연봉은 6억 5,000만엔(약 한화 70억원) 정도였다. 이는 이전 팀의 1루수 페타지니의 7억엔의 뒤를 잇는 높은 거액의 조건이었다. 이듬해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 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11]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와의 첫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16] 시즌 2할대 타율, 30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17]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2점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18][19] 그러나 그 해 45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OPS 0.755,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7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전년도 시즌을 아주 저조한 성적으로 마친 그는 스스로 WBC 불참을 선언하며 시범 경기에서만 8홈런을 기록하는 등 2009년 시즌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시즌 초 3할 타율, 장타율 1위 등에도 오르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였으나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졌고, 7월에는 시즌 처음으로 2군에 내려갈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팀이 정규 시즌 우승 헹가래를 칠 때도 자리에 없었고, 결국엔 2군에서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2경기에 선발 출장을 했으며, 그 외의 경기엔 대타로 주로 출전했다. 16홈런, 2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일본 시리즈가 끝난 이후인 11월 14일에 한일 클럽 챔피언십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20]

타격 면에서 예년에 비해 크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시즌 내내 2군과 1군을 오가면서 최종 성적 5홈런, 11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시즌 막판 1군 레귤러 멤버에 다시 포함된 뒤 팀의 센트럴 리그 클라이막스 시리즈 명단에 포함됐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시즌 후 11월 16일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의 이승엽.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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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1일 기자 회견을 열어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구 귀국했다.[21]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했다.[22]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원, 플러스 옵션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3할대 타율,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해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상대적으로 1루수로 출장한 경기가 적어 처음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시즌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는 결승전에서 KIA 타이거즈나지완과의 대결에서 6-2로 이기며, 데뷔 이후 첫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을 기록했다. 2013년 8월 28일 NC와의 경기에서 3000루타를 달성[23]했으며, 이는 가장 적은 경기 수로 달성한 기록[24]이다. 2013년에는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2할대 타율, 13홈런을 기록했다.[25] 이는 9홈런에 그친 1996년 이후 가장 적은 홈런이었다. 정규 시즌 막판에는 허리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타격 부진이 계속돼 7경기에서 타율 0.148(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11월 1일 7차전까지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동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의 믿음에 보답했다.[26] 하지만 주춤한 성적으로 인해 그 해 골든글러브(지명타자)를 타격왕을 차지한 이병규에게 내 줬다.

타격 자세 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역대 최고령 3할-30홈런-세 자릿수 타점을 달성하며 국민 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7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9월 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역대 최고령 30홈런,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으로 최고령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했지만 2차전에서 홈런을 쳐 내며 타이론 우즈를 제치고 포스트시즌 역대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기록은 3할대 타율, 32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2년만에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는 1루수로써 7번 받은 것을 포함해 총 9번을 수상하며 역대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구승민을 상대로 장외 홈런이자 시즌 10호 홈런, KBO 리그 통산 400호 홈런, 한일 통산 559호 홈런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15타수 6안타, 4할 타율을 기록했다. 시즌 후 비록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2월 8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KBO 리그 최초 두 자릿수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됐다. 시즌 후 FA 선언을 했고, 2년 36억원에 잔류했다.

8월 24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KBO 리그 통산 1390타점을 기록했고, KBO 리그 통산 최다 타점 신기록을 세웠다. 그 후 9월 14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이재우를 상대로 한일 통산 600호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5월 21일 송창식을 상대로 KBO 리그 첫 450홈런을 기록했고[27], 2달 뒤인 7월 29일에는 김성민을 상대로 KBO 리그 최초 4000루타를 달성했다.[28] 시즌 후반기부터 소속 팀을 제외한 9개 구단에서 그를 위해 은퇴 투어를 진행했고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그 경기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이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경기 후 팀은 그에 대한 성대한 은퇴식을 열었고, 그의 등번호인 '36번'은 구단 역대 세 번째로 영구 결번 처리됐다.[29] 그는 은퇴 후에는 야구 관련 직종에 종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며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30]

야구선수 은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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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KBO 홍보대사,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회 위원, SBS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년에 지도자 연수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으나[31]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32]

2022 시즌 후 김태형의 후임으로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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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아~ 이승엽 전설이 되어라 아~아~아~ 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아~ 이승엽 전설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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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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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타자', '라이언 킹' 등으로 불린다.
  • 일본 진출 이후에 붙여진 애칭은 ‘승짱’(일본어: スンちゃん, 한자 및 일본어 동시 표기: スン様)이다.
  •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일본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의 2008년 8월 22일자 보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올림픽, WBC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 '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고 불린다.[33] * 국제 대회나 중요한 경기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특히 8회에 결정적 역할을 해 '8회의 사나이'라고 불린다.
  • 삼성 라이온즈의 제 2구장인 포항야구장의 성적도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 불린다.

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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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입니다. 이번 역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는 대공원, 대공원역입니다. 내리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야구장에 오셔서 힘찬 함성과 뜨거운 열정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대공원역 안내방송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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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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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NPB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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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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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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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O MVP 5회 (1997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 골든글러브 10회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12년, 2014년, 2015년)
  • 한국시리즈 MVP 1회 (2012년)
  • 홈런왕 5회 (1997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 타점왕 4회 (1997년, 1999년, 2002년, 2003년)
  • 득점왕 5회 (1998년, 1999년, 2000년, 2002년, 2003년)
  • 최고 출루율 1회 (1999년)
  • 최고 장타율 3회 (1998년, 1999년, 2002년)
  • 최다 안타 1회 (1997년)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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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간스포츠 연간 3상 기능상 (1997년)
  • 스포츠조선 레간자 대상 (1997년)
  • 일간스포츠 연간 3상 기능상 (1998년)
  • 스포츠조선 레간자 대상 (1999년)
  • 한국스포츠연맹 선정 올해의 남자프로선수상 (1999년)
  • 일간스포츠001 최고타자상 (1999년)
  • 스포츠투데이 매일우유상 대상 (1999년)
  • 제 37회 백상체육대상 (2000년)
  • 서울외신기자클럽 외신홍보상 (2003년)
  • 일간스포츠 대한화재 프로야구대상 대상 (2003년)
  • 한국언론인연합회 선정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2003년)
  • 자황컵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2003년)
  • 일간스포츠 대한화재 프로야구대상 특별상 (2006년)
  • 제 55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대상 (2009년)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타자상 (2012년)
  •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타자상 (2012년)
  • 제 2회 카스포인트 어워즈 카스모멘트 TOP3 (2012년)
  • 프로야구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 (2013년)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재기상 (2014년)
  • 제 6회 카스포인트 어워즈 카스모멘트 TOP3 (2016년)
  • 휘슬러코리아 일구상 일구대상 (2016년)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공로상 (2016년)
  •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 2017 최고의 레전드 특별상 (2017년)
  • 2021년 SBS 연예대상 쇼•스포츠부문 남자 신인상

방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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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 성공시대 - 홈런왕 이승엽 (1999년 10월 23일)
    • PD수첩 - 이승엽 신드롬 (1999년 8월 24일)
    • 밀레니엄특집 아듀 20세기 웰컴 21세기 - 스포츠 100년 손기정에서 이승엽까지 (1999년 12월 31일)
    • 색션tv 연예통신 - 이승엽 이송정 결혼식 및 인터뷰(2002년 1월 7일)
    • 일밤 - 불가능은 없다 (2007년 12월 30일)
    • 대구MBC The Lion - 이승엽 삼성 복귀 내레이션 참여 (2012년 3월 25일)
    • 대구MBC 덕아웃 -프로야구 삼성 우승특집 방송 출연 (2012년 11월 16일)
  • KBS
    • 가족오락관 (1997년 11월 12일)
    • 체험 삶의 현장 -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1998년 11월 16일)
    • 서세원쇼 (1999년 8월 17일)
    • 작전타임 스포츠쇼 - 집중탐구 (1999년 9월 29일)
    • 개그콘서트 - 걸인의 추억 (2003년 8월 26일)
    • 해피투게더 - 쟁반노래방 (2003년 12월, 게스트 윤도현, 장나라와 동반출연)
    • 파워 인터뷰 (2005년 11월 27일)
    • 단박 인터뷰 - 야구 선수 이승엽 (2007년 6월 26일)
    • 여유만만 - 역대 연봉 스포츠 스타로 키운 사연 (2009년 7월 31일)
  • SBS

광고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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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광고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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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대구지방경찰청 대구경북 청소년선도위원
  • 2009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명예홍보대사
  • 2012년 대구경북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장학지원 홍보대사
  • 2022년 대한사회복지회 홍보대사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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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O
P
S












4
1995 삼성 19 121 411 365 55 104 29 1 13 73 0 3 33 54 .285 .345 .477 .822 174 4 4 2 7 1
1996 20 122 504 459 57 139 32 6 9 76 4 1 34 42 .303 .354 .458 .811 210 10 5 1 5 4
1997 21 126 577 517 96 170 37 3 32 114 5 2 49 79 .329 .391 .598 .988 309 10 6 1 4 4
1998 22 126 568 477 100 146 32 2 38 102 0 2 78 97 .306 .404 .621 1.024 296 4 5 1 7 10
1999 23 132 614 486 128 157 33 2 54 123 10 2 112 114 .323 .458 .733 1.190 356 7 12 0 4 6
2000 24 125 544 454 108 133 33 0 36 95 4 5 80 113 .293 .404 .604 1.008 274 5 7 0 3 7
2001 25 127 574 463 101 128 31 2 39 95 4 2 96 130 .276 .412 .605 1.017 280 6 12 1 2 11
2002 26 133 617 511 123 165 42 2 47 126 1 2 89 109 .323 .436 .689 1.125 352 11 15 0 2 5
2003 27 131 596 479 115 144 23 0 56 144 7 0 101 89 .301 .428 .699 1.127 335 11 10 0 6 9
2004 지바
롯데
28 100 382 333 50 80 20 4 14 50 1 2 42 88 .240 .328 .450 .779 150 6 3 1 3 0
2005 29 117 445 408 64 106 25 2 30 82 5 4 33 79 .260 .315 .551 .866 225 9 1 0 3 3
2006 요미우리 30 143 592 524 101 169 30 0 41 108 5 1 56 126 .323 .389 .615 1.003 322 5 5 0 7 3
2007 31 137 583 541 84 148 29 2 30 74 4 3 38 119 .274 .322 .501 .823 271 8 1 2 1 0
2008 32 45 170 153 21 38 4 0 8 27 1 0 11 37 .248 .324 .431 .755 66 3 6 0 0 0
2009 33 77 257 223 33 51 9 0 16 36 1 2 28 65 .229 .327 .484 .811 108 1 5 0 1 4
2010 34 56 108 92 13 15 1 0 5 11 1 0 12 26 .163 .280 .337 .617 31 0 3 1 0 0
2011 오릭스 35 122 432 394 28 79 20 0 15 51 0 0 32 121 .201 .257 .365 .622 144 8 0 0 6 1
2012 삼성 36 126 556 488 84 150 28 2 21 85 6 0 59 101 .307 .384 .502 .886 245 10 4 1 4 4
2013 37 111 483 443 62 112 24 0 13 69 3 1 30 94 .253 .298 .395 .693 175 8 2 0 8 2
2014 38 127 548 506 83 156 30 0 32 101 5 1 40 77 .308 .358 .557 .915 282 10 0 0 2 3
2015 39 122 522 470 87 156 28 1 26 90 2 1 40 71 .332 .387 .562 .949 264 10 6 0 6 2
2016 40 142 623 542 91 164 32 2 32 131 5 2 65 89 .303 .380 .518 .899 341 7 8 0 8 1
2017 41 135 533 472 65 132 30 5 24 87 1 1 47 85 .280 .347 .517 .864 244 7 6 0 8 6
KBO 통산 : 15년 1906 8270 7132 1355 2156 464 28 467 1498 57 25 953 1344 .302 .389 .572 .960 4077 120 102 7 76 75
NPB 통산 : 8년 797 2969 2668 394 686 138 8 159 439 18 12 252 661 .257 .324 .494 .818 1317 40 24 4 21 11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빨간 글씨는 아시아 최고 기록(한 시즌 56홈런),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 기록

주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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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날짜 소속 구장 상대팀 상대 투수 경기수 달성 당시 나이 기타 각주
최연소/최소 경기 2000루타 2002. 5.16 삼성 대구 롯데 914 25세 8개월 28일 DH-2

각주

편집
  1. 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
  2. OSEN - 2007년 12월 기사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의 칼럼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
  4. 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
  5. 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
  6. 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Archived 2014년 8월 14일 - 웨이백 머신
  7. 김찬석 (1995년 4월 10일). “‘95 프로야구 팡파르<1>판도분석...전력비슷…춘추전국예상”. 국제신문. 2019년 11월 17일에 확인함. 
  8. 이영만 (1994년 5월 2일). '94프로야구 韓(한)대화2점홈런에 李(이)만수 역전적시타 5월하늘 노장투혼"활활". 경향신문. 2019년 11월 17일에 확인함. 
  9. 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
  11. 스포츠 춘추 - 2010년 2월 박동희의 칼럼 "외다리 타법의 창시자, ‘야구는 도(道)이고, 타격은 검(劍)’"
  12. 박세운 (2022년 10월 4일). “무라카미, 일본인 최다 56홈런 신기록에 '30억' 집 선물 받는다”. 노컷뉴스. 2022년 10월 4일에 확인함. 
  13. “金在博(김재박),프로入團(입단) 포기”. 경향신문. 1979년 1월 25일. 2023년 2월 24일에 확인함. 
  14. 스포츠 춘추 - 2008년 9월 박동희의 칼럼 "일본 프로 야구의 대리인 제도를 말한다"
  15. 실제로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최정희 (2006년 12월 21일). “[스포츠 10대 해프닝②]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 조이뉴스24. 2008년 9월 22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6. 강구열 (2007년 10월 22일). “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 세계일보. 2008년 6월 1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7. 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
  18. 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
  19. 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 “이승엽 “내 야구 인생에 포기는 없다””. 스포츠월드. 2009년 11월 16일. 
  21. '국내 복귀' 이승엽, 日서 기자회견 '굿바이, 오릭스'. 스포츠서울. 2011년 10월 21일. 2013년 10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26일에 확인함. 
  22. 이승엽, 와이프에게 어쩔 수 없는 경상도 남자인가 보다 - 스포츠조선
  23. 삼성 이승엽, 역대 6번째 3,000루타 달성
  24. 이승엽 최소 경기 3,000루타
  25. 이승엽의 무서운 다짐 "내 이름, 꼭 되찾겠다" - 노컷뉴스
  26. 이승엽, 홈런이 전부가 아니다… 부진 털어낸 동점 적시타 ‘우승 발판’ - 스포츠월드
  27. '이승엽, 통산 450홈런'삼성, 661일만에 시리즈 스윕(종합) - 이데일리
  28. '라이언킹' 삼성 이승엽, KBO리그 최초 4000루타 돌파 - 마이데일리
  29. ‘일구대상’ 이승엽 “마지막 1년, 떠날 때 후회없도록”(일구상 시상식)
  30. 이승엽 "은퇴 이후 일? 야구 관련 아니면 안 한다"
  31. 이승엽, 메이저리그 코치 연수 떠난다…박찬호 추천이 결정적 - 엠스플뉴스
  32. 갑작스러운 이승엽 ML 연수 소식, 확인 결과 사실 무근 - 스포츠서울
  33. 김도헌 (2008년 8월 27일). “승엽은 병역 브로커”. 동아일보.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4. 현재는 방송되지 않는다.
  35. “300홈런 주인공 이승엽은 누구인가?”. 연합뉴스. 2003년 6월 22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6. 박세운 (2008년 8월 23일). '국민 타자' 이승엽, 퍼펙트 金 약속 지켰다”. 마이 데일리. 
  37. 이정민은 이후에도 홈런을 하나 더 맞았으나 프로 데뷔 첫 승을 챙겼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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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김태형
제11대 두산 베어스 감독
2022년 10월 14일 ~
후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