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
조오련(趙五連, 1952년 10월 5일 ~ 2009년 8월 4일)은 대한민국의 전직 수영 선수로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 ||||
---|---|---|---|---|
기본 정보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일 | 1952년 10월 5일 |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학동리 | |||
사망일 | 2009년 8월 4일 | (56세)|||
사망장소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 |||
별명 | 아시아의 물개 | |||
학력 | 해남고등학교 (중퇴) 양정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 | |||
생애
편집1952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1968년 해남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1972년 서울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76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81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학사 과정을 받았다.
그 후 조오련은 1969년 9월 제21회 종합선수권 대회 개인혼영 200m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운 후[1] 이듬해인 1970년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 그리고 4년 뒤인 1974년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에서 모두 아시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아시아의 물개'란 별명을 얻었고 1978년에는 수영 부문 한국신기록 50회 수립, 1980년에는 대한해협,[2][3] 1982년에는 영국-프랑스 도버해협[4][5], 2002년에는 대한해협, 2003년에는 한강 700리 종주, 2005년에는 독도[6]를 횡단했으며 2008년에는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또한 배우 오지호의 스승이기도 했던 조오련은 통산 자유형 14개, 개인혼영 12개, 접영 5개, 계영 2개 등 평영과 배영을 제외한 모든 영법에서 총 33개의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1989년 조오련 수영교실, 1993년 조오련 스포츠센터를 세웠고 1998년 2월부터 대한수영연맹 이사를 맡은 뒤 2001년 아내와 사별한 후 2009년 4월 지금의 아내 이성란씨를 만나 사랑을 싹틔우고 재혼하였으며 슬하에는 장남인 조성웅과 차남인 수영선수 조성모가 있다.
사망
편집조오련은 2010년 무렵 2차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하기로 하고 2009년부터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놓고 준비하다가 그 해 7월 말부터 자택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2차 대한해협 횡단을 한창 준비하던 도중 2009년 8월 4일 오전 11시 32분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쓰러진 후 급히 119 구급대에 의해 해남종합병원으로 이송되어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1시간 10여분 뒤인 낮 12시 45분 향년 58세를 일기로 별세했으며[7] 2021년 6월 10일 오후 2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되었다.[8]
“ | 바람이 멈추고 마음이 멈추고 독도 도전에 시계추도 멈추고 |
” |
— 조오련 일기, 2005년 8월
|
상훈
편집출연 작품
편집영화
편집텔레비전
편집각주
편집- ↑ '조오련 선수 프로필',《동아일보》, 1980,8,11
- ↑ 1980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화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대한해협(48km) 13시간 16분 횡단
- ↑ 도버해협(34km) 9시간 35분 횡단
- ↑ 이병철 <한 권으로 보는 탐험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7.1.6, p105...1982년 8월 30일에 9시간 36분이 소요되었다.
- ↑ 울릉도~독도간(87.4km) 18시간 횡단
- ↑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심장마비로 타계(종합2보) 출처:연합뉴스
- ↑ 수영 영웅 故 조오련, 12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 출처: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