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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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1966년 2월 23일, 그의 나이 21세 때 그는 한국 군대에 입대했다. 1966년 8월에 1차, 1968년 7월에 2차로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jungmyungseok.com/falsemessiah.proboards23.com/index0cc7.html?board=path&action=display&thread=1149669132| 제목=Life of faith as a newly enlisted soldier at boot camp| 확인일자=2006-11-21}}</ref> 30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고항에서 정명석은 [[문선명]]의 [[통일교]]에 입교하여 그의 교리를 배웠다. 그 곳에서 승공연합에서 반공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통일교에서는 강사가 된 사실 그 자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ref>[http://www.uc-japan.org/news/newsreport.aspx?id=352 統一教会HPニュースページ<!-- 봇이 붙인 제목 -->]</ref> [[1980년]] 3월에{{출처}} 통일교에서 나와 애천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
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1966년 2월 23일, 그의 나이 21세 때 그는 한국 군대에 입대했다. 1966년 8월에 1차, 1968년 7월에 2차로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jungmyungseok.com/falsemessiah.proboards23.com/index0cc7.html?board=path&action=display&thread=1149669132| 제목=Life of faith as a newly enlisted soldier at boot camp| 확인일자=2006-11-21}}</ref> 30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고항에서 정명석은 [[문선명]]의 [[통일교]]에 입교하여 그의 교리를 배웠다. 그 곳에서 승공연합에서 반공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통일교에서는 강사가 된 사실 그 자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ref>[http://www.uc-japan.org/news/newsreport.aspx?id=352 統一教会HPニュースページ<!-- 봇이 붙인 제목 -->]</ref> [[1980년]] 3월에{{출처}} 통일교에서 나와 애천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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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까지 정명석과 그의 종교 활동은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해 1월에 한국 [[SBS]]는 황(Hwang)이라는 여성에 대해 보도하였는데, 그녀는 정명석이 자신과 다른 많은 여성들을 성추행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정명석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에게 소송이 전가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뒤 정명석 씨측은 SBS에 소송을 걸었으나 나중에 소송을 포기하였다. 그 뒤로 몇 명의 다른 여성들이 정명석을 강간죄로 고소하였고 정명석은 여러 범죄 혐의 때문에 국제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정명석은 중국 [[최고인민법원 (중화인민공화국)|최고인민법원]]에서 송환을 결정했다. 중국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2008년]] [[2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여신도 폭행 혐의 정명석씨 국내 송환.|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02/h2008022018511922000.htm|출판사=[[한국일보]]|작성일자=2008-02-20|확인일자=2008-02-20}}</ref> [[2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정명석을 구속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정명석 JMS 총재 구속|url=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802/23/yonhap/v20078265.html|출판사=연합뉴스|작성일자=2008-02-23|확인일자=2008-02-23}}</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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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는 정명석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ref>{{뉴스 인용|제목=정명석 JMS총재 징역 6년 선고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12/2008081201759.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류정|작성일자=2008-08-13|확인일자=2008-08-15}}</ref>. 재판부는 이유로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젊은 여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
[[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는 정명석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ref>{{뉴스 인용|제목=정명석 JMS총재 징역 6년 선고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12/2008081201759.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류정|작성일자=2008-08-13|확인일자=2008-08-15}}</ref>. 재판부는 이유로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젊은 여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
2013년 6월 17일 (월) 08:57 판
정명석(鄭明析, 1945년 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종교인이며 기독교계 신흥 종교인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설립자이며 현 지도자이다. 저서로는 《비유론》,《잠언집 하늘말 내말》1~9,《영감의 시》 1~2,《새벽 단상》 1~3,《생명의 말씀》 1,2,3, 《구원의 말씀》1,2,3 등이 있다.
그는 1999년에 한국을 떠나[1] 2001년 6월 30일 이후로 강간 혐의로 인해 기소중지 이후 지명 수배가 내려졌다.[2] 그는 2002년에 인터폴에 의해 지명 수배를 받았다.[3] 그는 2003년에 홍콩에서 불법 거주로 인해 체포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나서 달아났다.[4] 그는 또한 사기, 성적 학대, 횡령으로 인해 지명 수배를 받았다.[5] 그 뒤 해외 도피 생활을 계속하다가 2007년 5월 11일, 중국 공안에게 부녀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어[6][7][8][9][10] 2008년에 대한민국에 송환되었다. 정명석은 여신도에 대한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2008년 8월 12일 1심에서 징역 6년을, 2009년 2월 10일 2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2009년 4월 23일 대법원 선고에 의해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현재 복역중이다.
약력
- 1945년 2월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월명동에서 출생
- 1966년 8월 베트남 전쟁 1차 참전(백마 9사단 : 현 대한민국 9보병사단)
- 1967년 10월 베트남 전쟁 2차 참전(백마 9사단)
- 1970년 4월 청소년 선도활동 및 구호사업, 노방전도활동 시작
- 1982년 3월 MS선교회 창설(대표 취임), 애천교회 창립
- 1983년 지방 8개 지역 교회 개척 및 지방순회 강연
- 1983년 11월 웨슬레 신학원 졸업
- 1985년 해외지부 개척 (미국, 일본, 대만)
- 1986년 9월 예수교 대한 감리회(진리) 창립
- 1991년 8월 아시아 세계 전도순회
- 1993년 3월 섭리 신학교 총장
- 1995년 문예사조를 통해 시인 등단
- 1998년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 1999년 8월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 세계문화교류 GACP 창설, 제 1회 프랑스 파리 대회 개최
- 2001년 11월 스리랑카 유네스코 산하 오픈인터네셔날 대학교(The Open International University for Complementary Medicines) 철학박사 학위 취득
- 2008년 현 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저서
- 《영감의 시 1》 (1989)
- 《잠언집 하늘말 내말 1》(1990)
- 《비유론》(1991)
- 《영감의 시 2》 (1996)
- 《생명의 말씀 1》(1997)
- 《생명의 말씀 2》(2003)
- 《생명의 말씀 3》(2003)
- 《잠언집 하늘말 내말 2》(2004)
- 《잠언집 하늘말 내말 3》(2004)
- 《잠언집 하늘말 내말 4》(2004)
- 《구원의 말씀 1》(2005)
- 《구원의 말씀 2》(2005)
- 《구원의 말씀 3》(2005)
- 《잠언집 하늘말 내말 5》(2005)
- 《잠언집 하늘말 내말 6》(2005)
- 《잠언집 하늘말 내말 7》(2012)
- 《잠언집 하늘말 내말 8》(2012)
- 《잠언집 하늘말 내말 9》(2012)
- 《새벽 단상 1》
- 《새벽 단상 2》
- 《새벽 단상 3》
일대기
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1966년 2월 23일, 그의 나이 21세 때 그는 한국 군대에 입대했다. 1966년 8월에 1차, 1968년 7월에 2차로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11] 30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고항에서 정명석은 문선명의 통일교에 입교하여 그의 교리를 배웠다. 그 곳에서 승공연합에서 반공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통일교에서는 강사가 된 사실 그 자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12] 1980년 3월에[출처 필요] 통일교에서 나와 애천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1999년까지 정명석과 그의 종교 활동은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해 1월에 한국 SBS는 황(Hwang)이라는 여성에 대해 보도하였는데, 그녀는 정명석이 자신과 다른 많은 여성들을 성추행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정명석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에게 소송이 전가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뒤 정명석 씨측은 SBS에 소송을 걸었으나 나중에 소송을 포기하였다. 그 뒤로 몇 명의 다른 여성들이 정명석을 강간죄로 고소하였고 정명석은 여러 범죄 혐의 때문에 국제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정명석은 중국 최고인민법원에서 송환을 결정했다. 중국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2008년 2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13] 2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정명석을 구속했다고 밝혔다[14].
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는 정명석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15]. 재판부는 이유로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젊은 여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2009년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정명석에게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1심보다 4년의 형량을 추가하여 징역 10년을 선고했다[16]. 재판부는 심리과정에서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던 여신도 1명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여 여신도 4명에 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하였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정 씨를 메시아로 여기며 권위를 신봉해 심리적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정 씨가 의료행위라고 속여 일부 여신도를 추행하고 성관계를 가진 것은 성폭행에 해당한다”며 “범행을 뉘우치지 않는 데다 피해자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2009년 4월 23일,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정명석의 상고를 기각,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17]
기독교복음선교회
그가 설립한 기독교복음선교회(CGM)는 이전에 애천교회,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 세계 청년대학생 MS 연맹, 국제크리스찬연합 등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교리는 통일교와 유사하다[18][19].
성폭행 사건 관련
1999년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명석의 성추문에 대해 보도하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후 여러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중지되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대법원이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20][21] 한국 경찰은 2002년 정명석에 대해 인터폴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으며 인터폴은 2004년 1월 그를 적색 수배 명단에 올렸다. 중국에서 수년간 도피 생활을 해오다 2007년 5월 11일 중국 공안에게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22][23] 2008년 1월 11일에는 그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여성 신도(한국 여성 1명, 일본 여성 1명)에게 위자료 총 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24]
강간에 대한 주장
정명석은 여러 건의 강간 혐의가 있어왔고 그를 따르던 수백명의 여성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탈퇴한 이전 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교주는 이 사진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해외로 불러들여 강간하는 것이 JMS의 조직적인 성범죄 과정"이라고 주장했다.[25] 도요시게 아이즈와의 말에 따르면, 정명석은 온 인류에 대한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갚기 위해서는 주(主)와 성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명목(피갈음)으로 그들을 강간한다고 언급하였다.[26] 그 뒤 정명석의 측근들은 그 여성들에게 "누군가에게 말하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3] 한 탈퇴 멤버는 "내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머리가 어지러웠고 지도자가 하는 일마다 저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3]
반대적 입장
정명석의 성추행 혐의에 대하여 서울방송을 통해 처음 보도가 된 후 기독교복음선교회 신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특히 2002년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인터뷰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도되는 과정에서 신자들은 규탄대회를 열어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방송이라며 여성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격렬히 항의했다.[27] 이들은 방송에서 성추행 피해를 증언한 여성들은 돈을 노리고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28]. 2007년 5월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된 것을 계기로 기독교복음선교회는 기존 교단과 반대파로 나뉘어 치열한 내분에 휩쓸렸다. 정명석의 친동생이 포함된 기존 교단파가 정명석의 귀국을 방해하고 중국 공안에 체포될 때까지 보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성추문 사건을 교단 권력 강화와 비리 은폐에 이용해왔다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다. 반교단파는 2007년 여름 결성된 내부 단체들인 ‘정명석 총재 명예회복추진위원회’(명추위), ‘깨어있는 섭리’(깨섭), ‘평신도 대책협의회’(이하 평대협), ‘장년부 비상대책위원회’등으로 이루어져 있다.[29] 2008년 1월 7일 중국 정부의 정명석 최종 송환 결정과 1월 12일 두 명의 성추행 피해 여성에 대한 대법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 확정[30] 직후 반교단파 측은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여러 언론사를 항의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31] [32]. 평대협은 정명석의 성폭행 혐의는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 비리를 저지른 교단 측이 정명석의 귀국을 막아왔기 때문에 그가 귀국하여 재판을 받으면 사실이 밝혀지고 누명도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33][34]해 왔다.
주석
- ↑ RTHK English News
- ↑ “Korean National Police Agency post 1”. 2006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Asahi Shimbun: 2,000 Japanese join cult led by suspected sex offender on the run from Interpol"”. 2007년 3월 2일에 확인함.
- ↑ “Korean National Police Agency post 3”. 2006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7days news documentary 13 June 05
- ↑ “Asian Cult Leader Arrested”. 2007년 5월 17일에 확인함.
- ↑ “Cult leader accused of raping followers captured in China”. 2007년 5월 17일에 확인함.
- ↑ “Alleged South Korean Rape Cult Leader Arrested in China”. 2007년 5월 17일에 확인함.
- ↑ “Setsuri cult leader wanted on rape charges under arrest in China”. 2007년 5월 17일에 확인함.
- ↑ 김종문 기자. “정명석 교주 8년 도피 막내려”. 중앙일보. 2008년 1월 4일에 확인함.
- ↑ “Life of faith as a newly enlisted soldier at boot camp”. 2006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統一教会HPニュースページ
- ↑ .“여신도 폭행 혐의 정명석씨 국내 송환.”. 한국일보. 2008년 2월 20일에 확인함.
- ↑ “정명석 JMS 총재 구속”. 연합뉴스. 2008년 2월 23일에 확인함.
- ↑ 류정. “정명석 JMS총재 징역 6년 선고”. 조선일보. 2008년 8월 15일에 확인함.
- ↑ 이종식. “성폭행 혐의 JMS 정명석씨 1심보다 무거운 징역 10년”. 동아일보. 2008년 2월 15일에 확인함.
- ↑ 성혜미. “大法, JMS 정명석 징역 10년 확정”. 연합뉴스. 2009년 4월 23일에 확인함.
- ↑ 심영식. “이단 전문가가 집필하는 이단·사이비 종파 실태 20 - JMS 정명석”. 장로신보. 2008년 1월 12일에 확인함.
- ↑ 정의현. “JMS 교주 정명석, 잠적 1년 8개월만에 귀국”. 뉴스앤조이. 2008년 1월 12일에 확인함.
- ↑ 대법원 2003.07.25. 선고 2003도180 판결
- ↑ “대법원, 정명석 그룹 섹스 사실 인정”. 시사저널.
- ↑ “Suspect of Corrupt Cult Founder Arrested in China”. 한국일보.
- ↑ Interpol is on the case
- ↑ JMS 정명석씨, 신도 성폭행 6천만원 위자료 확정조선일보 2008.1.11
- ↑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 ↑ “Japan Times: 'Love' cult snares student”. 2006년 12월 27일에 확인함.
- ↑ 양정지건. “SBS, "정명석 성추문 신빙성 있다" - JMS, "재판 중인 사건 보도는 잘못"…방송금지가처분 제기”. 뉴스앤조이. 2008년 1월 14일에 확인함.
- ↑ 양정지건. “SBS, JMS 정교주 치부 또 드러내 - 일본·대만 성추행 의혹 제기…JMS, "돈을 노린 사람들의 조작극이다"”. 뉴스앤조이. 2008년 1월 14일에 확인함.
- ↑ 이설. “정명석 총재 체포 뒤 내홍 겪는 JMS - 20년 장기 집권 교단에 신흥 세력 반기”. 신동아. 338~345면. 2008년 1월 14일에 확인함.
- ↑ 이종식 기자. “JMS 정명석 교주 9년 만에 송환”. 동아일보. 2008년 1월 14일에 확인함.
- ↑ 이세형 기자. “JMS 신도들 동아일보사 편집국 난입”. 동아일보. 2008년 1월 15일에 확인함.
- ↑ “언론계에 'JMS 공포'”. 조선일보.
- ↑ 석희열. “"JMS 내 정명석 총재 귀국 막는 세력 있다" - 평대협 "비리 저지른 지도부가 귀국 막고 있다" 주장”.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14일에 확인함.
- ↑ 법조팀. “JMS "정명석 성폭행 사실 아니다"”. 연합뉴스. 2008년 1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