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칸텔리
귀도 칸텔리(이탈리아어: Guido Cantelli, 1920년 4월 27일 ~ 1956년 11월 24일)는 이탈리아의 지휘자이다.
생애
[편집]칸텔리는 밀라노 근처 노바라 마을에서 군악대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칸텔리는 14세의 나이에 공개 연주회를 가질 만큼 일찌감치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있었다. 칸텔리는 이후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고 안토니오 보토에게 사사했다.[1] 음악원을 졸업한 칸텔리는 23세의 나이에 고향 노바라의 가극장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연주해 성공을 거두었다.[1]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칸텔리는 이탈리아군에 소집되었고 종전 후 라 스칼라 극장을 비롯해 이탈리아 각지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칸텔리의 지휘를 듣고 "그의 지휘 수준은 내가 이 콘서트를 지휘한 것 같다"는 극찬을 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칸텔리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2] 1949년 1월 15일 칸텔리는 토스카니니가 창설한 NBC 교향악단의 부지휘자가 되어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에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보스턴 교향악단,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다. 1953년과 1954년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지휘했고 1956년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가장 인기있는 젊은 지휘자였으며 베를린 필하모니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카라얀, 뵘, 요훔, 카일베르트, 첼리비다케 등과 함께 칸텔리를 물망에 올리고 있었다.[1]
1956년 11월 16일 칸텔리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후임으로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칸텔리는 이튿날 라 스칼라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등을 연주했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11월 23일 칸텔리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위해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로마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파리를 경유해 뉴욕으로 갈 예정이었다. 비행기는 오를리 공항에서 이륙에 실패, 공항 근처에 추락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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