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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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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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지(尹順之, 1591년 ~ 1666년 음력 9월 3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字)는 낙천(樂天), 호(號)는 행명(涬溟)이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작은할아버지 월정 윤근수의 문인이다.
생애
[편집]감사 윤훤(尹暄)의 아들이다.[1] 작은할아버지 윤근수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1620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조정의 관직을 두루 지냈으나 1627년 정묘호란 때 아버지가 군무(軍務)를 다하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되는 바람에 운둔하였다. 1629년 다시 관직에 나아갔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하였다. 1643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2] 1654년 지방 업무 처리에 문제가 발생하여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1657년 선조 수정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63년 공조 판서가 되었다.[3] 행명재시집(涬溟齋詩集)을 남겼다.[1]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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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전임 임광 |
제5대 조선 통신사 정사 1643년 |
후임 조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