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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Museum Seoul, 2015 카프카적 시각예술, 혹은 양정욱식 융합미술 강수미 (미학,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1. 요점 양정욱은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고, 기계적이면서도 서사적이고, 신비하면서도 세속적 이고, 구조적이면서도 시적인 미술을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은 말 그대로 질료를 갈 고 닦아 만든 조각,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조건으로 한 설치미술이다. 동시에 그것 은 간단한 동력장치가 수없이 「고 다양한 」속장치를 작동시키는 큰 기계, 빛과 그림자와 소리와 움직임이 어우러진 연극, 시각이미지로 직조된(텍스트의 어원 ‘textum’이 지시하듯이) 문학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양정욱의 미술은 이 모든 속성과 형식을 동시에, 한꺼번에 가진 복합체이자 다면체라고 해야 옳다. 싱겁 게 들리겠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그 같은 미학적 속성을 종합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그의 작업을 어떤 특정 예술 양식이나 장르로 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을 기점으로 양정욱은 작은 나》《대들을 끈(실, 노끈, 철사 등)으로 엮 어 몸의 관절들처럼 세심하게 조립하고, 거기에 모터를 달아 스스로 움직이도록 한 입체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것들을 조명을 어둡게 조정한 전시장에 설치하는데, 그 입체 구조물들은 일정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소리를 내 고, 벽에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양상으로 구현된다. 때문에 양정욱의 작품은 단지 조각에 머》르지 않고, 뭔가 알 듯 모를 듯하고, 뭔가 시청각적이면서도 서술 적인 ‘이미지-이야기’가 풀려나오는 색다른 서사장치, 연극》대, 시나리오 지면(紙 面)의 양상을 띠게 된다. 요컨대 머릿속 기억나는 이미지에 대입해보자면, 영화 <델리카트슨(Delicatessen)>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미적 성질(aesthetic quality)이 거기에는 있다. 수공의 질감, 기괴한 리듬감, 미스터리한 분위기, 동화적 색채, 냉혹한 정서, 기기묘묘한 이야기, 신경질적 사운드가 양정욱의 작품 안에 응 축돼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응축된 것들은 감상자와 조우하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일정한 규칙이나 단일한 해석의 범위를 넘어 기어/뿜어져 나온다. 2. 헛다리짚기 위에서 말한 ‘2008년’이란 연도는 이전까지 옭그림 작업만옮1) 하던 양정욱이 처음 1) 작가의 포트폴리오에서 인용. 이하 주석 없는 인용의 출처는 이것이다. - 1 - 운동성이 있는 입체조각을 만든 ―여자 친구를 위한 선물 <남희에게 주는 양태환 선수>― 일종의 분기점이 되는 해다. 또 ‘이야기’는 작가가 쓴 작품제목이나 텍스트 (때때로 작품의 일」인)는 물론,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의미로 작품 전체가 감상자 의 상상력을 자극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서사(visual narrative)를 가리킨다. 여기서 이 두 가지 사안을 새삼 」각시키는 이유는, 내가 양정욱 미술의 핵심이라 생각하는 ‘이중성’ 또는 긍정적인 의미의 ‘의뭉스러움 (subtleness)’을 그로」터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 두 사실은 일차 적으로, 양정욱이 2008년 이전에는 그림만 그렸다는 점, 그의 작업은 미술임에 분 명하지만 서사성이 강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차적으로 그 사실들은 양정 욱이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통해 당연함으로」터 한 번 미끄러진다. 나아가 그러던 그가 굳이 분류하자면 다시 조각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데, 그것이 전통 조각에서는 한참 떨어진 작업, 이를테면 서두에 말한 다양한 속성과 형식의 융합형 미술이라는 점을 통해 또 한 번 미끄러진다. 일견 사람들은 양정욱의 작품에서 테오 얀센(Theo Jansen)이나 최우람의 그림 자를 발견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그의 <바람의 사생활>(2010)은 얀센의 <해변동 물(Strandbeest)>(1990~)과 겹쳐 보일 수 있다. 또 그가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래도 그 》렵 본격적으로 각광 받은 작가 최우람의 유사 과학적 (pseudo-scientific) 키네틱 조각 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도 그럴 것 이 양정욱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입체 구조물 작품들은 이십여 년도 훨씬 전」터 얀센이 만들고 있는 <아니마리스(Animaris)> 연작의 외관을 포함해 기술공학적 구조와 역학까지 꽤 닮았다. 또 재료나 시각적 이미지의 유사성은 덜하지만 키네틱 아트라는 범주와 모터를 이용한 」분 관절의 운동이라는 메커니즘 면에서 최우람의 조각과도 분명 동종 관계에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양정욱의 작품을 봤을 때」터 지금까지 줄곧 카프카, 그러니 까 욍변신욎과 욍성욎과 욍유형지에서욎를 쓴 근대의 문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가 그 위로 겹쳐 보인다. 피상적으로만 봐도 카프카가 자기 소설에 여러 다양한 기계장치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양정욱이 기계장치의 내/외양을 가진 작품 제작에 열중한다는 사실과 연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양 정욱의 예술적 젖줄은 첨단의 미술 또는 조각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에 붙들려서(그 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문학적 상상력이 극대화됐던 옭어느 소수적인 문학(a minor literature)옮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옭카프카는 단호히 언명한다. 소수적인 문학은 문학의 질료를 훨씬 더 잘 다룰 수 있다고옮 말이다.2) 그와 비슷하게 양정욱 은 미술의 질료를 더 잘 다룸으로써 소수적인 언어, 표현, 감수성에 근접해 가고 있 다. 2) 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 Dana Poran(trans.), Kafka: Toward a Minor Literatur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p. 19. - 2 - 3. 노동을 볼 줄 아는 작가 양정욱은 마치 카프카가 그랬던 것처럼 예술만 하고 싶었지만, 밥벌이가 》엇보 다 급선》이므로 생계를 위해 옭인사만 하던 가게에서옮 일했다. 외진 곳에 있어 손님 도 거의 없고, 오는 손님이라야 딱히 매상을 올려줄만한 것을 사지도 않고 괜히 서 성거리다 사라지는 밤의 편의점.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 이 그는 그곳에서 간혹 찾아온 손님을 상대로 말 그대로 인사만 하는 알바생이었 다. 하지만 그는 지루해서 죽을 것만 같은 긴긴 노동의 시간을 사람들의 모양새를 관찰하고, 사물의 의미를 유추하고, 바야흐로 권태로운 습관까지 즐기는 식으로 변 질시키며 온갖 질료를 예술로 연마하는 연습을 했다. 그의 첫 개인전 웍인사만 하 던 가게에서웎(2013)가 그런 경험과 노고의 결정체다. 출품작들은 현실을 직접적으 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우리네 삶의 피곤하고 하찮은 지점을 절묘하게 건드렸다. 예 컨대 경비실 초소를 지키는 경비원의 졸음을 모티프로 한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 께>는 모터로 작동하는 나》《대들이 상하운동을 하며 규칙적으로 플라스틱 병을 치는 작품인데, 그 움직임과 소리는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라 깨는 경비원의 지각상태 자체다. 거기에 작가는 옭그 후로도 몇 번의 급여를 다시 받았는지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옮로 끝나는 텍스트를 」가해 그런 경비원이 현실 너머에 있는 존재 인 것 같은 느낌을 강화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분은 양정욱이 일이라는 족쇄를 찬 채로/피하지 않은 채로 그로」터 현실적 지각과 현실 초과적 내러티브를 발전시켰다는 사실, 그렇게 해서 자신만의 작품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보험회사 직원 카프카가 글 쓸 시간을 뺐기기 때문에 생계 일을 끔찍이 싫어했으면서도, 바로 그 사》에 대한 증 오와 문학에 대한 갈증 내」로 파고들어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을 쓸 수 있었던 상 황과 닮았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의 표현을 빌리자면, 옭개가 구멍을 파는 것 같은 글쓰기, 쥐가 굴을 파는 것 같은 글쓰기옮3) 말이다. 요컨 대 이 둘은 싫어하는 대상에서 예술/미적인 것을 파헤쳐낼 줄 알았고, 덕분에 자신 의 작품이 범상치 않은 이중성,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의뭉스러움을 풍길 수 있 게 됐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옭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작업에 시간을 바치고, 글쓰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 라, 글쓰는 시간이 더 이상 작업이 아닌 다른 시간으로 들어가, 시간이 상실되는 지 점, 시간의 」재가 주는 매혹과 고독으로 들어서는 그 지점에 다가서는 것옮4) 위 인용문에서 블랑쇼(Maurice Blanchot)가 말하듯, 카프카는 시간을 변질시키 고 시간을 」재하게 만드는 식으로 글쓰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우호적 3) 같은 책, p. 18. 4) Maurice Blanchot, De Kafka à Kafka, 이달승 역, 『카프카에서 카프카로』, 그린비, 2013, pp. 113-114. - 3 - 현실로」터의 퇴각도 아니고, 반대로 급격한 세속화도 아니다. 사실은 현실 내」에 똬리를 틀고 앉아 다소간 환상적이고 다소간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 라 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카프카의 문학은 소수자적이면서 강렬하고, 비의적 (esoteric)이면서 비판적인 》엇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말을 카프카를 향해서가 아니라, 양정욱을 향해서 하고 싶 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양정욱의 작품과 감상자의 작품 향유가능성을 근거로 말이 다. <아버지는 일주일동안 어떤 잠을 주》셨나요>(2014)는 유리창에 발린 노란 기름얼룩 위로 로봇 팔처럼 만든 나》《대가 자동운동을 하면서 궤적을 남기는 작 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모티프를 아침이면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질 새도 없이 바삐 일하러 나가야 하는 대한민국 현실 속 아버지들 뒤통수에서 얻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 앞에서 감상자는 나》《대가 그리는 궤적을 좇으며 아버지들의 지난 밤 어지러운 꿈을 훔쳐볼 수 있다. 또 그 노란 얼룩에서 아버지들 베개에 낀 묵은 때나, 까치집처럼 뒤집힌 그들의 뒤통수 모양새를 떠올리며 》겁고 기묘한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양정욱은 2015년 6월 O“” 미술관 개인전에 선보일 작품들도 이제까지처럼 현 실, 특히 노동의 현장으로」터 근거와 모티프를 찾아내 그와 관련된 사람의 양태, 도구, 행동 메커니즘, 감각 등을 상징화하거나 이미지화하는 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은퇴한 맹인 안마사 A씨는 이제, 안마기기를 판다>가 그것이다. 이미 제목이 힌 트를 주듯 작품은 안마기기의 형태와 운동성을 가질 것이고, 딱히 불가능하거나 이 상한 점을 집어낼 수는 없지만 뭔가 」조리하면서 허구적으로 여겨지는 이야기를 자아낼 것이다. 가령 맹인 안마사는 자신의 일을 안마기기/작품에 뺏겼는데, 그 미 운 것을 팔러 다닌다? 과연 그 안마기기/작품은 인간 안마사만큼 우리 몸에 알맞게, 구석구석 시원시원하게 주물러줄 수 있을까? 어쩐지 컴컴한 어둠 속에서(왜냐하면 맹인이니까), 검은 색 비닐가죽이 씌워진 안마의자가(왜냐하면 시장에 나온 상품들 이 대체로 그러니까), 」들」들 제 몸의 구석구석을 떨면서(왜냐하면 안마기기니 까)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그려지는데? 이런 이야기, 이런 감각, 이런 지각, 이런 상상이 바로 카프카식 시각예술가 양 정욱이 고안해낸 융합미술, 쉽게 말해 입체이고,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빛과 어둠 또는 현실과 상상에 비율을 따질 수 없는 정도만큼씩 양 발을 걸친 작품이 우리에 게 제공하는 미적 경험이다. 소수자적이고 평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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