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핑계로 모여 술 마셨군” 루게릭 그녀, 눈으로 농담한다

  • 카드 발행 일시2025.02.14

어느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어느날 루게릭이 찾아왔다를 내 관심에도 추가해드렸어요.

2화. 어느 날 루게릭이 왔다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가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자택에서 12년 지기 '평심이' 엄마들과 만나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이날 '(친구들 방문 덕에) 생기가 돌고 환자임을 잊게 된다'고 했다. 아이 친구 엄마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아픈 은정씨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화·권재원·신은정·김미경·이종은씨. 전민규 기자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가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자택에서 12년 지기 '평심이' 엄마들과 만나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이날 '(친구들 방문 덕에) 생기가 돌고 환자임을 잊게 된다'고 했다. 아이 친구 엄마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아픈 은정씨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화·권재원·신은정·김미경·이종은씨. 전민규 기자

# 2015년 11월

언젠가부터 왼쪽 다리에 힘이 빠져 절뚝거렸다. 통증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평소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초등 2학년생 아들과 네 살 딸, 직장 일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친정엄마가 등 떠밀어 3개월 만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정형외과, 척추센터, 신경과로 옮겨다니며 계속 검사만 했다. 웬일인지 병명을 못 찾았다. ‘아픈 곳도 없는데 왜 이리 유난이지?’ 그러다 신경과 근전도검사에서 진단이 나왔다. 루게릭병.

‘꿈인가….’
그렇게 어느 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10만 명에 한두 명 걸린다는 병에 내가?’ 병원 문을 나서는데 가을 하늘이 어찌나 맑고 푸른지, 단풍은 또 얼마나 붉고 고운지. 그 아름다움이 설움이 되어 마음에 박혔다.

운동신경세포만 사멸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은 치료법과 치료제가 없는 병이다. 생존 기간은 보통 2~3년. 하지만 루게릭병 환자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투병 나이로 열 살을 맞이한 신은정(52)씨처럼. 은정씨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호흡을 위한 기도 절개 후 ‘묵언수행’ 중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7월과 올해 1~2월 안구마우스와 메신저를 통해, 그리고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은정씨 자택에서 이뤄졌다.

안구마우스는 모니터 아래에 달린 센서가 눈동자를 인식해 눈동자가 가는 방향으로 마우스 커서가 움직인다. ‘ㄱ’을 치고 싶을 때 화면 속 자판에서 커서를 ㄱ에 고정한 뒤 눈을 깜박이면 클릭이 돼 ㄱ이 써진다. 숙달된 은정씨는 한 글자 쓰는 데 5초 정도 걸린다. 이렇게 보내온 그녀의 답변과 표현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기도 절개로 말을 못 하는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의 눈과 입이 되어주는 안구마우스. 침대 위에 달린 모니터 속 자판과 안구 인식 센서로 글자를 쓴다. 전민규 기자

기도 절개로 말을 못 하는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의 눈과 입이 되어주는 안구마우스. 침대 위에 달린 모니터 속 자판과 안구 인식 센서로 글자를 쓴다. 전민규 기자

# 2025년 2월

그녀는 움직이지 못한다. 눈과 일부 얼굴 근육, 오른 손가락 근육만 남아있다.

병은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힘 빠지는 증상이 왼 다리에서 오른 다리로 퍼져 5년 만에 휠체어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게 됐다. 팔에도 증상이 나타났다. 밥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아지자 어린 시절 이불에서 노란 지도를 발견했을 때처럼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음식을 씹거나 삼킬 수도 없게 돼 위에 구멍을 내고 고무관을 꽂았다. 관으로 주입하는 물과 적당히 데운 액체 경관식이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식사다.

마라탕, 탕후루 맛이 제일 궁금해요. 

혼자 호흡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위루술(위에 구멍을 내 관을 삽입하는 수술)은 별일도 아니게 느껴졌다. 기도를 절개해 인공호흡기로 숨 쉬며 24시간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낸 지 4년. 말을 전혀 못 하지만 그나마 안구마우스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게 고마울 뿐이다. 이걸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영화·오디오북·인터넷 강의도 본다. 은정씨의 눈과 입인 셈이다. 다만 60㎝ 거리에서 눈을 계속 부릅뜨고 있어야 해 눈이 아주 아프고 시리다.

# ‘엄마, 죽지 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루게릭병을 앓았던 스티븐 호킹 전기를 읽어주며 엄마도 같은 병이라고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