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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니아의 “덕”》 예술행위 강수미 (미학, 동덕여대 교수) 내부를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깥의 자리를 견지할 때 온89 관계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혹은 많이 유보해서 그럴 때만 그것이 그것답게 있을 수 있고, 원 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도 나/주체의 손길 아래서 망가지거나 변질돼버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통상 손 안에 꽉 쥐어야만 대상의 실재를 파악할 수 있고, 그 속을 샅샅이 통G할 수 있다고 H어왔다. 우리말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휘어잡다’는 의미의 ‘장 악(掌握)하다’ 또는, 독일어로 ‘손안에 있다’ 및 ‘”존하다’는 뜻의 ‘포어한덴 자인 (vorhanden sein)’이 그것을 표상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어디 꿈이라는 것이 명징한 의식 으로 꿰뚫는다고 파악되던가. 사랑하는 사람이 품안에 있다고 완8한 내 소유물이 되던가. 압도적 진공상태에서 음악이든 소음이든 들리던가. 오9려 그럴 경우 애초부터 모호성 자체 인 꿈은 산산이 흩어져버리고, 애인은 편안함의 갑갑증으로 달아날 욕망을 품기 시작하며, 대기를 진동시키던 소리(音)는 뭉개져버린다. 그 존재들은 이미 항상 종속관계나 내포관계 로 묶기에 불가능한 위치에서 나와 관계한다. 또 『아무리 ‘가』게 느껴지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 같은 지각의 거리를 요구한다. 나는 이 두 사안에 미학적 이름을 부여 하고 싶다. 앞선 것이 레비나스(E. Levinas)의 외재성(exteriority) 개념을 참“해 ‘바깥에 있기’라 칭한다면, 후자는 벤야민(W. Benjamin)의 아우라(Aura) 개념을 원용해 ‘아우라적 거리’라는 명명이 가능할 것이다. 이 둘은 이하에서 논할 작가 “덕”의 미술에서 내가 부 각시키고자 하는 예술적이고 인문적인 특질이 갖춰지기 위한 주요 요소다. 혹은 그의 창작 방식 8반을 “망하건대, “형적으로 탁월해지고 비평의 사유와 담론을 촉발시키는 힘을 가 진 잠재성의 “건이다. 서두에서 꿈, 사랑하는 이, 음을 손 안에 쥘 수 없고 주체가 그 바깥에 머물러야하는 존 재의 예로 꼽은 것은 자의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들은 명시적으로는 “덕”의 일민미술관 개인8 밦꿈밧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소주『(방꿈의 정원밪, 방님의 정원밪, 방음의 정원밪)에서 가져왔다. 동시에 함축적으로는 이 작가가 30여년의 창작 기간 동안 천착해온 미적 대상으 로부터 추출해본 속성들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8시 기획 측이 『시하듯 문자 그대로의 꿈, 님, 음일 수 있지만, 한 걸음 깊이 들어가 한 작가의 예술세계 속 여러 모티프를 결정(結 晶)화했을 때 얻어지는 일종의 미적 질(質)인 것이다. 욕망》 충동, 동경》 비”실로서의 꿈. 쾌락원칙》 죽음충동의 희비쌍곡선으로서 사랑. 아름다움》 에너지, 우주적 질서와 자연 의 생기로서 음. 우리가 가령 1뱔뱓0년대 후반부터 2015년 ”재까지 개별 형상이나 기교의 변화, 나아가 작품의 내러티브나 프로젝트의 주『가 8개돼온 궤적에 근거해 “덕”의 미술 을 사변적으로 재구성해도 좋다면 꿈, 사랑, 음은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그것은 예컨대 한국의 》거사 중 특정 순간들에 작가의 감정을 이입해 추념한 <20세기의 추 억>(1뱔뱔0~뱔6) 연작에서 보듯, 역사에 대한 “덕”만의 서정적이고 구성적인(사실+해석+ 상상+사진적 드로잉 행위...) 접근 태도를 뜻할 수 있다. 또 본인의 연로한 어머니를 극적 이미지의 무대로 초대한 작품(1뱔뱔6)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패션디자이너 노라 노와 한국인 으로 영국 귀족》 결혼해 ‘레이디 로더미어’로 불리는 문화예술 후원자 이정선을 다룬 <리 -컬렉션(Re-Collection)>(2002)까지에서 보듯 여성의 삶에 그가 보내는 찬미와 연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번 일민미술관 3층에서 감상자가 새롭게 마주하는 설치작 품 <음의 정원>, 즉 작곡가 윤이상의 협주곡 <공후(벌ong-벍u)>와 <공간(Espace)>에 백 색 스《린 뒤의 식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자연 리듬을 “화시켜 시청각적 연출이 극대화된 통각적 심미성을 더해야 할 것이다. 이상적 지복의 시간/감각 속 미술하기 내게는 “덕”의 이 모든 작업들이 수렴되는 특별한 감각상태가 있어 보인다. 비극적이 지만 아름답고, 고생스러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평온하고, 상실의 비애와 망각의 고통 이 배어있지만 타자가 지금 여기로 우아하고 고요하게 재생돼 걸어 들어오는 상태. 기승8 은 어찌되었든 이상적인 느낌으로 귀결되는 감각 말이다. 그 감각상태는 “덕”의 창작 기 법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요컨대 사진이미지를 흑연》 목탄 소묘로 재”해내는 정교 하고 정적인 시각 표” 능력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또 이 작가의 인간적 면모와 내면으 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좀 더 중층의 차원에서 그 감각 변이의 역학을 설명하고 싶다. 앞서 『시한 ‘바깥에 있기’와 ‘아우라적 거리’가 그것인데, 이 두 요소는 “덕”이 타자를 구속하지도 않지만 소외시키지도 않는 방식으로 작품화하는 기 초로서 각 작품에 이상적 지복의 상태를 마련한다. 또 그 타자가 망실된 》거사의 한 “각, 언『든 스러져갈 위기에 처한 한 인간》 그 생(生)일 경우 각각의 존재를 침해하지 않고 남 용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예술적 아우라를 부여하는 기『다. 예컨대 누가 찍었는지도 채 알 수 없는 구한말 기생의 흑백사진》 20세기 초 서구 영화산업의 뮤즈였던 그레타 가르보의 화보는 “덕”의 미술행위 속에서, 『작 시기나 작업 맥락이 다르다 해도, 보는 이에게 동 질적인 감각을 유도하는 환영적 사랑의 초상화가 된다. 변이의 》정에서 작가는 각 인물, 각각의 사진이미지에 어떤 차별의 인장도 찍지 않고, 억압적 의미부여도 시도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덕”은 모티프가 된 존재들의 바깥에서, 그 존재들》 서로 범접하기에 “심스 럽고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관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창작의 설계와 결부시켜 논하자면, 작가가 역사적/》거사적/파편적 사실들을 ”재 기록으로 남아있는 사진에 기초해 시각화하더라도, 거기에 반드시 가상적 내러티브와 이상 화된 이미지를 벽돌처럼 넣어 작품을 구축해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까지 그의 대부분 작업이 그러했지만, 이번 개인8에서 이 같은 창작 공학은 특별한 확장성을 가졌다. 작가 “덕”이라는 실재, 동명이인인 배우 “덕”의 연기, 그리고 소설가 김기창》의 협업을 통 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 ‘“덕”’이 예술적 구성》 융합을 거쳐 <“덕” 이야기>라는 유 사(pseudo)아카이브-회화-비디오-설치작품으로 창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그 시청각적 서사를 다시 풀어쓰는 비생산성보다는 미학적 핵심만 간추리는 생산성을 택하고 싶다. 요컨대 핵심은 <“덕” 이야기>가 ”실로는 존재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다면적이 고 혼성적인 시간, 그러나 그 시계바늘이 고갈》 부정 대신 생성》 축적의 추 쪽으로 향해 가는 이상적 시간(理想-時)을 시각, 청각, 촉각으로 극화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8시 밦꿈밧의 신작이자 역작인 <“덕” 이야기>에서 진짜 이야기는 미술-문학-영화연기 쪽 예술가 셋이 빚어낸 이야기, 즉 가상의 ‘“덕”’이 누볐던 인생의 꿈》 독거노인으로서의 죽 음 사이에 있지 않다. 오9려 작품 속에서 어떤 리얼리티와 팩트도 보증할 수 없지만, 반대 로 그 둘이 선행돼 있지 않다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시간, 그런 모순》 역설의 시간 자체 라고 봐야 한다. 그 자신 볤장미의 이름볥, 볤푸코의 추볥 같은 뛰어난 소설의 저자이자 기호학자인 에코 는 ‘유토피아’를 응용해 문학에서 ‘유《로니아(Uchronia)적 이야기’라는 세부 장르를 『안했 다(Umberto Eco, 방허구적 주장 vs. 역사적 주장밪, 볤젊은 소설가의 고백볥, 131). 유토피아 가 ‘어디에도 없는 공간’으로서 이상향(理想鄕)이라면, 유《로니아는 ‘어느 시간에도 없는 시간’으로서 이상시(理想時)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시적 이야기’로 번역할 수 있는 그 장르 는 예를 들어 구한말 일『강점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까를 작가의 상 상력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이야기 유형을 말한다. 물론 거기에는 필수 “건이 있다. 그 이 야기가 흥미롭고 유의미하게 읽9기/들리기 위해서는 일『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선(先)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20세기의 추억>부터 최근작 <“덕” 이야기>까 지, 그리고 여기서 다루지 않았지만 “덕” 미술의 다른 축인 매장》 발굴의 프로젝트 가운 데 <구림마을 프로젝트>(2000)나 <DMZ>(2005)가 이 같은 “건을 충족하고, 장르적 정 체성을 효》적으로 실”시킨다는 점을 강“하고 싶다. 에코의 문학적 『안에 봉사하기 위해 서가 아니다. “덕”의 미술에서 가장 빛나는 동시에 가장 말해지지 않았던 측면이 바로 그 처럼, 사실에 기반을 둔 이상화된 시간》 감각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로니아를 향 해 째깍거리며 가는 음의 리듬들, 역사의 환영》 옛 일의 연인들, 꿈의 만화경을 그 미술 덕분에 지금 여기서 마주하는 것이다. 시간의 내부에서 비껴난 지점에서 유일무이한 ”재 순간을 존중하며.